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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왼손잡이 소녀》에 가장 먼저 따라오는 이름은 미국 독립영화계 최전선에 선 스타 감독 션 베이커다. 이번 영화는 그와 함께 《탠저린》(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레드 로켓》(2021), 《아노라》(2024) 등을 제작한 대만 출신 감독 쩌우스칭의 첫 장편이다. 단독 연출작이긴 하지만 그간 두 사람이 영화적 동지로서 공유한 시선과 함께 작업해온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션 베이커는 공동 각본가이자 제작자로 참여했다. 다섯 살 아이의 시선을 경유해 대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세 모녀의 일상이 천진하게 펼쳐지는 동안, 영화의 시야는 바다이야기예시 이들을 둘러싼 가족 공동체와 사회로 차츰 넓어진다. 최근 이 작품은 2026년 열릴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우수국제장편영화상 부문 대만 대표 자격으로 오스카 레이스를 시작했다.



영화 《왼손잡이 소녀》 포스터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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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버전 《플로리다 프로젝트》, 야시장 국숫집 버전 《탠저린》
타이베이로 이사한 세 모녀는 새로운 정착을 위해 분주하다. 집은 사진에서 보았던 것에 비해 확실히 비좁지만, 누구도 그런 것에 오래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이들에게 적응은 곧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다. 엄마 슈펀(자넬 차이)은 야시장 가판을 빌려 작은 바다이야기꽁머니 국수 가게를 연다. 갓 20대인 첫째 딸 이안(시 유안 마) 역시 빈랑(껌처럼 취급되는 대만의 기호식품 중 하나로 각성 효과가 있는 빈랑나무 열매에 향신료나 약초를 가미한 것) 가게에서 일하며 생활 전선에 뛰어든 사이, 둘째 이징(니나 예)도 엄마의 국숫집에서 잔심부름을 돕는다.
야시장 골목을 발랄하게 누비는 이징의 뒷모습과 검고 긴 머 바다이야기비밀코드 리카락을 휘날리며 바이크를 모는 이안을 따라 바라보는 타이베이라는 도시, 그중에서도 야시장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다. 잠들지 않는 네온사인과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가 빚는 활력은 이징이 들여다보던 만화경을 경유해 가장 처음의 이미지에 당도한다. 생동감과 화려한 색채가 이들의 삶을 온통 둘러싼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 비친 풍경의 인상과는 별개로 가부장 모바일바다이야기 적 사회 분위기 아래에서 경제적 곤궁을 겪는 한부모 가족의 하루하루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대만 버전 《플로리다 프로젝트》, 야시장 국숫집 버전 《탠저린》으로 우선 소개한다면 어떨까. 《왼손잡이 소녀》는 내적으로는 대도시의 그늘 아래 존재하는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향하는 리얼리즘적 시선을 지니고, 외적으로는 단출한 제작 환경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일궈내는 '션 베이커 스타일'의 유효성을 담보한다. 이 모든 특징을 아시아 지역의 가족 드라마로 이식한 결과라는 것이 《왼손잡이 소녀》가 남기는 또렷한 첫인상이다. 영화는 《탠저린》의 실험적 프로덕션과 마찬가지로 촬영용 전문 카메라 없이 아이폰으로만, 촬영이 진행 중임을 고지한 채 실제 야시장 가게를 빌려 찍었다. 이 날렵한 제작 방식은 보수적인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 가린 것을 들여다보며 균열을 내는 데 최적의 도구이자 하나의 스타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션 베이커와 쩌우스칭이 협업한 기존 작품들이 주로 타인이었던 이들이 겪는 소동극 형태에 가까웠다면 《왼손잡이 소녀》는 가부장제에 기반한 아시아 가족 특유의 정서를 중심에 두고 인물들의 갈등에 좀 더 깊은 층위를 더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어린 모녀에게 가족이라곤 그 둘뿐이었지만, 《왼손잡이 소녀》의 인물들에게는 대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고충 역시 지워진다. 차별적 대우가 일상인 아들 우선주의, 결혼 후 경제적 수준이 각기 달라진 슈펀 자매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은 이 드라마 속 긴장의 온도를 아슬아슬하게 높인다.
어린 이징이 겪는 고민은 일견 사소하지만 실제적인 종류다. 종종 조부모가 돌보는 이 어린이는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에게 꾸중을 듣는다. "왼손은 악마의 손"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위협은 할아버지에겐 제대로 가르쳐 바로잡아야 할 예절 교육의 일환이다. 별생각 없이 왼손으로 던진 공을 잡으러 달려나간 반려동물이 사고를 당하는 일이 생기자 이징은 왼손이 하는 일을 '악마의 짓'으로 여긴다. 잡화점에서 작은 물건들을 훔치는 것을 시작으로, 이징의 왼손은 돈 때문에 힘들어 하는 엄마를 돕고 싶은 마음에 벌인 수상한 행동에도 동원된다.



영화 《왼손잡이 소녀》 스틸컷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일상의 억압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분투
《왼손잡이 소녀》의 세 모녀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이다. 아이들을 홀로 키우는 엄마 슈펀, 대다수 친구들과 달리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안, 왼손잡이 이징. 이들을 둘러싼 야시장은 이징의 시선을 경유해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물건과 화폐의 가치 교환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더 중요한 배경이다.
구체적인 쓸모를 일일이 짐작하기 어려운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놓고 파는 조니(블레어 창) 같은 사람과 달리 젊은 여성에게는 빈랑 판매가 더 암묵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판매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대만의 빈랑 가게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한 젊은 여성들이다. 가게 주인인 남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물건을 파는 데 몸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이안은 폭넓게는 션 베이커의 기존 영화들 속 성노동자들과 연결되는 인물이다. 그들의 욕망도, 수치심도 모두 돈으로부터 비롯된다.
살아가는 방편 사이의 선택들로 인한 일시적 모습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 대다수는 이것이 이들이 지닌 정체성의 본질인 양 낙인찍는다. 때로는 도덕적 위선으로 지탱되는 가족 내 세대 간 질서가 외부보다 더한 두터운 벽을 만든다. 오직 이징의 왼손 사용을 적발하는 데만 자신의 엄격함을 적용하는 듯한 할아버지, 여권이 필요한 체류자들을 이용한 불법행위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면서도 슈펀 모녀의 선택들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할머니는 모순적이다. 영화는 가부장적 사회문화와 모순적인 가족 내 질서의 이중 억압에 놓인 인물들을 가장 생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1996)을 연상케 하는 후반부의 폭로는 온 가족이 모인 할머니의 생일잔치에서 일어난다. 느닷없다기보다 곪아 터져나온 고백에 가깝다. 슈펀 모녀가 대만 외곽 지역에 남겨두고 오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 같은 과거의 비밀은 이 장면을 기점으로 분명한 현재가 된다. 영화 분위기가 한 차례 뒤바뀌기 때문에 조금은 양가적인 감흥을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야시장을 기점으로 타이베이의 이곳저곳을 활기차게 누비던 카메라가 모든 인물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장소 안으로 고정된다는 점, 한 인물을 통해 나온 핵심적 발언의 여파를 들여다보는 이후 시간이 영화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될 만해서다.
그러나 비밀 폭로는 단순히 충격을 위한 장치가 아닌 인물들이 내면과 그들의 인간성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가는 계기에 가까워 보인다.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사회와 가족이 강요하는 기대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인물들이 그 안에 있다. 짧은 폭풍이 지나가고 세 모녀가 다시 분주히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는, 사회 고발 드라마가 아닌 극영화로서 맺을 수 있는 궁극적 낙관성을 향해 있다. 인물들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가 발휘하는 최소한의 선의 안에서 일상과 자존을 지키는 길을 택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아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힘차게 뛰었듯, 《아노라》의 주인공이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듯. 기자 admin@no1reelsite.com